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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아폴로 11호

ElG 2020. 6. 10. 23:31

아폴로 11호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1969년 7월 20일. 달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말이었다. 이날 미국의 아폴로 11호는 세계인들이 TV를 시청하면서 달에 착륙해 인류 역사상 첫발을 내디뎠다. 수천 년 동안 우리 신화와 찬양의 대상이 되어 온 달이 이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한국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달착륙을 생중계한 조경철 박사는 '아폴로 박사'로 유명해졌고, 과학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달 착륙이 있던 해에 천문학부에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아폴로 11호의 역사

인간이 달에 사람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 때문이었다. 당시 경쟁관계에 있던 미국과 소련은 우주기술 개발을 통해 과학기술 우수성을 입증하려 했다. 첫 번째 승자는 소련이었다. 1957년 소련은 미국보다 먼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고 인류 최초의 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았다. 1961년 보스토크 1호 발사 후 유리 가가린(1934~1968)을 태운 최초의 인간 우주비행사가 탄생했다. 이것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1917~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10년 안에 인류는 달에 착륙하고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1969년 미국은 소련을 넘어 마침내 달에 사람을 보낸다. 아폴로 계획에 대한 미국의 예산은 당시 250억 달러 정도였으며, 현재 한국 통화로 약 100조 달러의 가치가 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한 것은 천문학의 결과일 뿐 아니라 발사시험 중 아폴로 1호 폭발로 인한 인명피해였다.

1969년 7월 16일. 지휘 모듈, 기계선, 달 착륙선으로 구성된 아폴로 11호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거대한 새턴 V4 로켓에 의해 발사되었다. 아폴로 11호는 이륙 12분 만에 지구 궤도에 진입해 지구 궤도를 1회 반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마지막 3단 로켓을 토성 V에 점화시켰고 달을 향해 궤도로 진입했다. 30분 후, 토성 V 로켓은 마침내 분리되어 저장된 달 모듈과 합쳐졌다. 이륙 후 3일 만에 달 뒷면에 도달한 아폴로 11호는 기관선의 로켓 엔진에 불을 붙여 달 궤도에 진입했다.

1969년 7월 20일부터 오후 20시 17분 우주비행사들이 달 모듈로 전환한 뒤 잔잔한 바다 위 달에 착륙한다. 당시 아폴로호는 닐 암스트롱 선장과 함께 지휘 모듈 파일럿 마이클 콜린스(1930-)와 착륙선 파일럿 버즈 올드린(1930-)을 태우고 있었다. 그중 선장 암스트롱과 조종사 올드린은 이글 달 착륙선으로 갈아탔다. 이 글은 콜린스가 운용하던 지휘 모듈인 콜롬비아에서 분리해 역추진 로켓을 발사해 달에 착륙시켰다.
그러나 이 문장은 달에 착륙하여 몇 마일 떨어진 착륙 지점을 통과할 때 4분간의 비행 오차가 있었다. 창밖으로 흩어져 있는 큰 바위를 발견한 암스트롱 선장은 빠르고 수동으로 우주선을 조종해 안전하게 착륙시켰다.

아폴로 11호의 착륙 과정

 

우주비행사들은 먼저 60도 시야의 착륙선의 삼각형 창밖을 내다보고 항성과 과학관측장비 설치에 적합한 장소를 찾았다. 차량 외부 활동에 대한 준비는 계획보다 두 시간이 더 걸렸다. 우주인 존 영에 따르면 착륙선의 해치는 개발 과정에서 크기가 바뀌었지만 우주복의 생명유지장치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결과 암스트롱은 착륙선에서 하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비행사의 심박수는 해치를 드나들 때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암스트롱이 팀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마이크는 그의 호흡을 분명히 파악했다. 다리 옆에 설치된 카메라의 D자형 고리를 당기자 슬로 스캔 TV 카메라가 시작돼 사다리를 빠져나가는 암스트롱의 모습이 보였다. 다만 이 영상은 텔레비전 방송의 표준에 맞지 않아 영상 화질이 좋지 않은 재래식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이 이번 방송에서는 전시됐다. 신호는 미국 골드 돌 기지에 접수됐지만 호주 중계기지가 더 민감했다. 몇 분 후, 릴레이 임무는 호주의 파르 쿠스 전파망원경으로 옮겨졌는데, 이 망원경은 더욱 민감했다.
다양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달에서 온 우주 유영을 찍은 최초의 이미지가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이 순간 지구 상 최소 6천만 명의 사람들이 TV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저속 스캔 TV에서 촬영한 고화질 영상은 여전히 빠져 있다.
암스트롱은 착륙선 다리로 내려와 달이 "밝고 거의 먼지투성이"로 보인다고 보고하고 착륙 후 약 6시간 반 만인 1969년 7월 21일 02:56 UTC에서 달 위의 역사적 발자국을 촬영했다.

1969년 7월 21일 17시 54분. 우주비행사들은 이 글을 다시 이륙하여 달 궤도를 돌고 있는 지휘 모듈과 도킹하는 데 성공했다. 지구로 돌아오면 명령 모듈과 기계선만이 지구 궤도로 복귀해 착륙선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궤도에 남게 된다. 결국 우주비행사를 태운 지휘 모듈만이 대기를 통해 지구로 돌아왔다. 아폴로 11호 사령 모듈은 현재 워싱턴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달 궤도에 머물던 달 모듈은 아폴로 12호가 비행할 때까지 궤도에 머물렀지만 결국 달과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아폴로 11호가 귀환한 뒤 다시 아폴로 12호를 달에 보내 1967년 발사된 서베이 3호에서 카메라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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